유광식 사진전
< 삼층집 >
2020.10. 23.(금) - 2020. 11. 0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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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라는 기억으로 무엇을 해야 했을까
-작가노트 중 일부 발췌-
서울에서 빙빙 돌던 나는 인천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집으로 징검다리를 건넜고, 옆집, 아랫집, 윗집 등으로 옮겨 다니며 보일락 말락 한 나의 존재가 지금은 이곳에 다다랐다. 이곳에는 과거 오십 년간 인천 산업화의 동맥이던 경인고속도로의 직선 구간(가좌-석남-가정)이 지역의 중앙을 관통한다. 이제 도로는 기대 수명을 다했는지 일반화 도로로 트임이 진행되고 있다. 위쪽과 아래쪽 마을의 연결은 구간별로 보도육교가 대신한다. 석남역 7호선 연결공사 마무리로 주변 주택의 높이가 술렁이겠지만, 아직도 집적된 예전 주거지와 산업공단의 흔적이 빨래의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남아 있다. 이곳에서 ‘어쩌다 나는 여기에 와 있을까?’라는 물음의 걸음 속에 기다림의 선율을 따라 잠 못 드는 밤을 지나왔다. 계단을 오르다 겁에 질려 파래졌던, 남아 있는 기억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했을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던 것들을 스치듯 사진에 담아왔다. 그 속에서 결국, 새롭게 발견한 것이 내내 보아왔던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접속되었다. 남북으로 뻗은 경인고속도로 시대와 함께 자라던 기억의 장소, 즉 삼층집이었다.
장소는 시간이 메우는 집들의 합이다. 집은 다채로운 분위기를 지니며 그 속에 뜨거운 존재가 드리운다. 땅 아래로 전동차의 용틀임이 있고 하늘에는 비행기가 쿵쾅거리며 경인고속도로 위로 오토바이 굉음이 어둠을 갈랐다. 한편, 제각기 지어진 모습마다 고속에 견줄만한 감속의 맛도 음미할 수 있었다. 뜬금없는 모습일지언정 누군가의 유년 상자일 테고 생생한 삶의 현실인 셈이다. 그 응시와 수집이 돌아볼 기억으로 남았고 무섭지 않게 한 발 디뎌 올랐던 나의 계단이 되었다. 숫자 ‘3’의 연상이 그려낸 화합과 균형, 기대의 얼굴은 어제의 일기이자 오늘의 도시였다. 굳이 수칙을 따지지 않더라도 ‘3’의 그림은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다. 전시 명 ‘삼층집’은 1~5층의 시대적 건물을 상징함과 동시에 우리가 당도하고 부대끼며 채워 두었던 온기로 표현하는 게 마땅하다. 그저 머무르며 곱씹어 보면 되는 것이다.
전시의 장소는 어느 이층집의 자그맣고 후미진 지하 공간이다. 남은 페인트 저장소, 연탄 아궁이의 흔적과 먼지가 수북이 쌓인 바닥 돗자리 격의 반지하이다. 생강굴 같은 공간에 시간의 장면을 모아 깊숙이 저장한다. 주변의 삼층집은 실제로 무너져 가고 있다. 신축과 철거, 경계와 감시, 자본과 신분 등에서 벗어날 순 없지만, 이 또한 도시의 생리이니 차분히 색칠, 도배해도 무방할 것이다. 올해 도쿄올림픽 자리에 끼어든 코로나 19를 무심히 곁에 두고선 지금 이곳에 실재하는 기억의 수열 방정식을 투망해 본다. 나는 삼층집을 짓는다.